[전시] 팀 황학동

[공공미술 프로젝트 – 팀 황학동]

오프닝 초대 – 2014년 11월 8일 토요일 오후 5시

*Live LIFE의 공연이 진행 될 예정입니다.
*출간물 [공공저널 – 팀황학동]을 배포합니다.

전시기간 2014년 11월 9일 (일) ~ 11월 23일 (일)

기획 – 윤민화
참여작가 – 손준호, 오진욱, 이호인, 최기창, 최우진
리서처 – 노해나, 안성은, 이소라, 장한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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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학동에서 공동(common)을 향하기

1.
[공공저널 – 팀 황학동]은 2014년 5월부터 10월까지 진행해 온 ‘공공미술 프로젝트 – 팀 황학동’의 약 6개월 동안의 활동을 정리하고 기록한 출간물이다. 동시에 이 책은 2014년 11월에 황학동 케이크갤러리에서 개최되는 동명의 전시와도 그 내용을 함께 하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책은 ‘공공저널’을 표방하면서, 다음 해 혹은 향후 언제가 되던 황학동에서의 공공작업이 2호, 3호로 지속되기를 바라는 바람을 갖는다.
‘팀 황학동’은 리서쳐 다섯 명(노해나, 안성은, 윤민화, 이소라, 장한별)과 작가 다섯 명(손준호, 오진욱, 이호인, 최기창, 최우진)으로 구성된 프로젝트 팀이다. 황학동 솔로몬 빌딩 104호를 거점으로 사진관을 운영하면서, 2014년 5월부터 10월까지 약 6개월 동안 황학동 중고품시장 상인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며, 그 모습을 사진에 담아서, 오늘의 황학동 시장을 기록하고자 하였다.
황학동 시장과는 아무런 연고가 없던 젊은 미술인들이 모여 ‘팀 황학동’을 이루고, 적지 않은 시간 동안 황학동 시장에 발걸음을 하면서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된 것은 사실 쉽게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납득할 만한 공동의 동기가 있던 것은 아니었다. 2000년대 초반에 청계천 복개공사 사업이 계획되고 수립되는 기간에는 ‘변화’라는 것은 바로 눈 앞에 있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 곳을 찾아서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했던 선례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 후로 십여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팀 황학동’이 기획되고 운영이 될 수 있었던 데에는 올 해부터 황학동 시장에 ‘케이크갤러리’라는 전시 공간이 정식으로 오픈하게 된 것에 그 출발이 있다. 본래 2010년부터 ‘솔로몬 아티스트 스튜디오’라는 이름으로 황학동 시장의 솔로몬 빌딩에서 운영되던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올해부터 그 명칭을 케이크갤러리로 바꾸었고, 동시에 독립 큐레이터로 활동하던 필자가 전시를 담당하여 이 곳 황학동에서 기획을 하고 새로운 전시 공간을 도모하게 된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미술을, 전시 기획을 한다는 것이 반드시 지역성이나 장소성에 기반한 당위성을 가져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황학동 시장의 중앙상가 건물인 솔로몬 빌딩의 일부를 점유하고 ‘그곳에서’ 미술을 한다는 것은 필자에겐 묘한 책임감을 불러 일으키는 일이었다. 그 책임감이라는 것은 정확한 어떤 말로 집어내기는 어렵지만, 이를테면 골목 하나만 넘어서면 곧장 고개를 내밀고 있는 롯데캐슬, 그리고 그에 대조되는 매일 같이 중고 가전제품을 분해하고 재조립하는 작업장 분위기의 시장 골목, 혹은 분명히 어느 시기에는 솔로몬 빌딩에서도 상점을 내고 장사를 하셨을 시장 상인들, 그러나 지금은 비어 있는 빈 상점에 들어선 전시 공간, 마지막으로 무엇보다도 갤러리로 출근하는 길에 마주치는 상인분들의 호기심 어린 표정 – 이런 것들에서 오는 내적인 필연성이었다. 게다가 그 표정은 필시 “거기서 대체 무얼해? 예술?” 이라고 아주 정확하게 묻고 있었기 때문에 번번히 허허롭게 웃으며 인사를 나누고 서둘러 엘리베이터에 올라타기 일쑤였다.
그러니까 이 곳에서 이방인은 ‘나’였다. 인터뷰를 해보면 대부분 이 곳 상인분들은 30-40년 동안 한 자리에 계셨다고 한다. 그 분들은 황학동 시장이 가장 활황이던 70-80년대를 지나, 90년대에 IMF를 온 몸으로 겪었고, 2000년대에는 그 많던 노점상들이 줄줄이 동대문 등지로 쫓겨나는 일들을 눈으로 직접 보았던 것이다. 그나마 청계천 복원을 마친 요즘에는 이 곳 ‘황학동 벼룩시장’은 이미 사라진 것으로 치부되어서 더 이상 찾아오는 사람도 많지 않다. 그러던 중 2010년 경부터 솔로몬 빌딩의 빈 상점에 소위 ‘예술가’들이 들어와서 작업을 하기 시작하고, 전시회를 하는 모양새를 지켜보는 일이란, 그들에게는 퍽 낯선 일이었을 것이다.

2.
상인들의 입장에서 나는, 그리고 나를 비롯한 미술하는 사람들은 과연 어떻게 비출지 생각해 본다. 한 때는 자신들의 거처이자, 상점이 있었던 솔로몬 빌딩에 낯선 젊은이들이 찾아들어서 예술을 한다며 전시회를 열고, 그들끼리 어떤 행사들을 마련하는 것을 바라보는 일은 어떠할까. 아마도 그런 일은, 청계천변의 노점상들을 싹 갈아 엎고 그럴싸한 상가 건물들을 주욱 세워둔 일이나, 텃밭을 가꾸던 곳에 들어선 롯데캐슬과도 같은, 너무나도 이질적이고 생소한 또 하나의 사례를 만드는 것이 되어 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고민들 가운데 ‘팀 황학동’을 기획하게 되었다. 황학동 시장에 떨어진 기름 한 방울처럼 섞이지 못하는 미술이 아니라, 말 그대로 황학동과 함께 ‘팀’을 이루고 싶었다. 필자와 함께 예술학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동기 넷과 지역 기반의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관심을 갖고 있었던 다섯 명의 작가들이 모여서 미술을 매개로 황학동 시장에 다가서 보기로 작정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팀 황학동’ 활동의 기반이 된 것은 ‘이야기가 있는 사진관’이다. 솔로몬 빌딩 104호에 임시로 사진관을 만들고 황학동 상인분들을 대상으로 증명사진, 장수사진, 여권사진 등 각종 사진 인화 서비스를 시작하였다. 카메라를 들고 시장으로 들어가서 무작정 상점 앞에서 셔터를 눌러대는 일방적인 개입이 아니라, 상호적인 참여를 염두하였기 때문에 ‘사진관’이라는 다리를 놓게 된 것이다. 손준호와 이소라를 중심으로 운영된 ‘이야기가 있는 사진관’은 총 37명이 참여하는 성과를 보였다. 이소라는 글 ‘얼굴의 미학’에서 사진관을 통해 상인들의 얼굴을 마주하고, 그 얼굴을 알아가는 것에서 오는 공공성과 그 미학에 관하여 썼다. 손준호가 촬영한 사진들은 전시회에서 앨범 형태로 제작되어 보여질 예정이다.
만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오진욱은 향후 황학동에 관한 만화를 제작 할 예정이다. 그는 안성은과 함께 팀을 이뤄서 활동하면서 상인들과 가장 많은 인터뷰를 했고, 또한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이끌어 낸 장본인이다. 준컴퓨터, 삼일사 등과의 인터뷰는 70-8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황학동의 역사를 받아 적고 있으며, 닭머리를 으깨서 만든 튀김이라던가, 가죽 신발을 삶아서 양념을 해서 먹거리로 팔던 기억 등 상상도 못했던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있다. 황학동이 갖는 보편적 역사와 상인들의 기억속의 개인적인 역사가 교차되는 에피소드들은 이번 전시에서 그 일부가 전시 될 것이다. 안성은은 이러한 인터뷰에서 온 다양한 이야기들을 토대로 ‘황학동스러움’에 관한 나름의 정의를 사전적으로 보여주는 재미있는 글을 보여준다.
최우진과 장한별은 황학동 시장 안에서도 유독 ‘민속골동’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최우진은 민속골동 김정남 사장의 화분에서 모티프를 얻어, ‘팀 황학동’의 거점인 104호 공간을 임시로 꽃집으로 꾸미고 황학동 시장 골목길에 꽃길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장한별은 글 ‘황학동 [민속골동] 채굴하기’에서 김정남 사장 일가가 수집한 골동품들에 깃든 나름의 미적 취향에 관하여 서술하고 있다.
이호인은 상인들과 서로의 얼굴을 그려주고 나눠 갖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이 작업은 상대방을 ‘그린다’는 수행사로 ‘그려진 타자’을 주고 받는다. 함께 팀을 이루었던 노해나는 샛별사 임형태 씨와의 인터뷰에서 그가 언급한 ‘시간의 잔고’라는 말에서 모티프를 얻어, 황학동에 겹쳐져 있는 시간성에 관하여 글을 썼다.
마지막으로 필자와 팀을 이루어 활동한 최기창은 황학동 시장에 클래식 악기 공연을 기획했다. 매주 주말에 클래식 연주를 선보이면서 낡은 중고품만을 다루는 시장에 살아있는 음악에서 오는 생생함이라는 요소를 가미해보고자 하였다.

3.
다시 황학동 시장에 관하여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시장에는 케이크갤러리가 위치한 솔로몬빌딩을 중심으로 삼거리가 형성되는데 크게 세 종류의 상점들이 눈에 들어온다. 첫 번째는 과거 황학동의 대표적인 판매 품목이었던 민속골동품 상점, 그리고 시계, 장식품 등 각종 중고물품만을 취급하는 상점, 마지막으로 중고 가전제품을 사고 되파는 전자제품 상점이 그것이다. 청계천이 복원되기 전, 많은 노점상들이 천변에 위치하여 자연스럽게 소비자들의 발걸음이 황학동 중고품 시장으로 이어지던 시기에는 민속골동품과 중고제품들이 가장 활발하게 거래되었다면, 요즘 황학동에서는 중고 가전제품 상점들이 가장 바쁜 모습이다.
가전제품 상점들이 위치한 골목에는 매일 세탁기, 냉장고, 에어컨 등을 실은 트럭과 리어카가 마치 흥정하듯이 어슬렁 어슬렁 들어온다. 어느 상점에선가 흥정이 잘 이루어져 중고 가전제품들이 내려지면, 상점 주인들은 기기들을 분해하고 말갛게 씻긴다. 하루 종일 이 골목 바닥에는 물기가 사라지지 않는다. 각종 세제들로 거품 목욕을 한 기기들은 새로운 부품들로 정비되어 진열대에 다시 선다. 요즘 이러한 가전제품을 사러 오는 사람들은 주로 동남아 사람들이다. 스리랑카에서 온 어느 노동자와 인터뷰를 진행한 적이 있는데, 그가 들려준 이야기는 퍽 흥미로웠다. 한 달에 한번, 스리랑카로 가는 배에 컨테이너 가득 중고 전자제품들을 실어서 수출한다는 것이었다. 나름 시스템이 분화되어 있다는 사실도 인상적이었다. 필자가 만난 사람의 경우는 시장에 나가서 직접 가전제품들을 사는 팀이고, 다른 팀은 그렇게 사들인 가전제품들을 동두천으로 싣고 가서 한데 모은다. 거기에서 취합된 제품들은 부산으로 옮겨져 컨테이너에 실려 스리랑카로 떠나는 배에 태워진다. 그러고나면 스리랑카의 어느 부두에서 그 가전제품들을 받아서 현지에서 비싸게 판다는 것이다.
요즘 황학동에서 가장 생기가 있는 상점들은 바로 이렇게 수출용 가전제품을 판매하는 곳들이다. 그러니까 황학동은 나름대로 일종의 살 방법을 찾은 것이다. 과거에 황학동의 대표 품목이었던 민속골동품점이나 중고물품 상점들도 여전히 바쁘게 움직이고 하루도 빠짐없이 가게를 오픈하지만, 하루에 도대체 몇 개를 팔아서 임대비를 내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매출은 보잘 것 없어 보인다. 하지만 막상 찾아가 이야기를 나눠보면 상점을 운영하는 상인들도, 그곳을 방문하여 소소하게 대화를 나누는 방문객들도, 나름 세상의 변화에 적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그들이 여전히 활발할 수 있는 동력이 소위 가장 잘 나가던 시기였던 70-80년대에 대한 회상과 추억의 노스탤지어일지라도 말이다. 이렇게 황학동에는 이렇게 현재와 과거가 공존한다. 한국어가 서툰 외국인 노동자들이 상대적으로 젊은 가전제품 상인들과 흥정하는 현재와 과거엔 누구보다 활발히 골동품들을 취급했을 오래된 상점의 노스탤지어가.

4.
이렇게 황학동 시장에 관하여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알게 되면서, ‘기록’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청계천 복원 공사 이후, 문화인류학이나 도시계획학 등에서 연구를 위해 찾던 발걸음도 사라진 추세다. 모두들 청계천이 복원되면서 황학동 시장도 싹 바뀌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지금도 황학동 시장은 살아서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목도한 이상, 미술을 매개로 기록하고 전시로 드러내 보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기록’의 중요성은 나보다도 훨씬 앞서서 황학동에 관심을 갖고 연구 및 기록을 한 미술인들의 자취를 찾으면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를테면, 미술비평가 임근준은 1997년부터 2005년까지 ‘황학동 프로젝트’를 진행한 바 있다. 나는 그가 편집장으로 있었던 <월간 공예>의 지면과 2002년 광주비엔날레의 부대행사로 열렸던 <국제 워크숍 – 공동체와 미술>  자료집을 통해 그가 쓴 글과 사진 기록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또 있다. 아트스페이스 풀의 아카이브에서 보관하고 있었던 <청계천 탐험>이라는 책은 2003년 플라잉시티와 문화연대, 도시건축네트워크의 협업으로 청계천 일대를 면밀히 탐사하고 연구한 자료들을 기록하고 있었다. 청계천 복원 사업을 계기로 연구를 시작하였기 때문에 이들은 청계천과 천변 노점상들에 방점을 두고 있지만, 황학동에 관한 이야기도 크게 자리하고 있다. 이들의 자료는 ‘팀 황학동’이 황학동에 다가서는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앞서 이 곳을 다녀가고, 연구하고, 기록한 방법들을 타산지석 삼아서 지금의 황학동을 기록하는데 보탬이 되었기 때문이다. 한가지 또 반가운 소식은 ‘통의도시연구소’에서 올해에는 황학동을 주제로 연구 중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언젠가 ‘역사’가 될 ‘현재’를 기록하는데 중점을 두고, 역사학자들을 중심으로 체계적으로 황학동을 조사, 연구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미술인으로서 ‘팀 황학동’의 시선과는 다른 층위에서 황학동을 기록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
역사적으로 정부는 이 지역을 가리는데 급급했고, 서울의 근대화와 도시화의 이름에서 의도적으로 황학동은 빠지고 없었다. 또 청계천이 복원되고 청계천의 역사와 문화를 찬양하는 와중에도 바로 인근에 위치한 황학동의 중고품시장은 그 우스꽝스러운 영광에서조차 삭제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학동에는 지금도 여전히 중고품 시장이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수십년 이상 자리하고 있는 상인들이 있고, 끊임없이 발걸음을 하는 소비자들이 있다. 상징화된 도시의 그늘 아래에서 가장 실재적 삶은 없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시간의 차이를 두고 반복적으로 황학동에 발걸음을 하는 나와 같은 미술인에 의해서, 혹은 도시 연구자들에 의해서 그들의 삶이 드러나고 있다. 그들은 황학동을 통하여 서울이라는 도시의 숨겨진 증상을 들춰낸다. 그 증상은 때로는 삼일시민아파트로, 때로는 골동품상인의 수집취향을 인터뷰하는 것으로, 때로는 곧 개발될 땅에 꽃을 심는 아주머니의 뒷모습으로 기록되고 있는 것이다. |윤민화

*본 글은 [공공저널-팀황학동]의 서문으로 작성한 글로서, 웹진 “똑똑 talktalk 커뮤니티와 아트”에 2014년 8월 15일에 기고한 글 <황학동, 끝나지 않은 이야기>의 일부를 각색한 글임을 밝힙니다. http://blog.naver.com/ggcfart/22009055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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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rates/ Exhibition Dep. Seoul Museum of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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